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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저는 8세에 혼자 초등학교 입학식에 갔습니다. 이후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살면서 입학과 졸업을 비롯하여 모든 학교 일을 혼자 처리했고 생계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어린 맘에도 숨이 턱에 차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약간은 나이에 맞지 않는 애늙은이나 성인아이의 모습이 형성된 시간인 듯 합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18세 즈음에 서울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 후 대학을 서울로 가서 혼자 살았습니다. 일찍 고생으로 형성된 치열한 인생관과 그나마 외할머니가 물려준 태도로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제적으로는 윤택해졌지만 여전히 불안한 시대와 싸웠고 미성숙한 젊음과 싸워야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뒤, 10년 뒤인 28(정확히는 27) 즈음에 가정을 이루었고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사역을 했다기보다는 가난하거나 꿈이 없는 청소년들과 무너진 한국 교육을 복음과 기독교 학교운동으로 바꾸어 보겠다고 공부방 중심의 청소년 사역을 하며 세상과 싸운 시간이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는 여전히 교회와 학교를 바꾸기 위해 유학을 가면서까지 치열하게 외부의 것들을 배우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 38세에 풀타임 부교역자로서의 경험도 없이 한 공동체를 책임지는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역시 교회를 바꾸느라고 10년을 치열하게 교회의 관습과 교인들의 미성숙, 그리고 가족들과 무엇보다 나 자신의 부족한 리더십과 싸우며 달려서 48세 하고도 10개월이 지나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는 지천명 앞에까지 왔습니다.

 

문득 이런 제 인생을 돌아보니 약 50년 동안 10년 단위로 큰 외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10년마다 큰 변화가 만들어지기 까지 대부분 저의 삶은 고립된 상태에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함이든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서든지 주로 외부와 치열하게 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 제 시선은 언제나 외부를 향해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외부를 바꾸려고 했고, 외부와 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결과 나름대로 이룬 것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 주목도 받기 시작했고 외형적인 변화와 결과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내면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내면을 보는 것조차도 외부를 바꾸기 위한 수단이었지, 내 자신의 성찰과 변화 성숙을 위해서는 내면을 보는 시간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이 후유증으로 저는 최소한 1년 전부터 내면의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외부적인 것에 집중하느라고 돌보지 못한 내면에 공허가 찾아오면서 뭔가 다른 것으로 그 공허를 채워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주로 식탐이었습니다. 사역을 늦게 마친 날은 주로 집에만 가면 그 늦은 시간에 배가 부르도록 먹어야만 허기가 채워지는 듯 했습니다. 실제로는 영혼이 배가 고픈데,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여 육신의 배라도 채우면 뭔가 채워진 듯한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태입니다. 배가 부르도록 먹고는 아이패드로 주말의 예능을 보거나 음악을 들어야 했습니다. 집에 티브이를 없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말하길, 난 티브이 보는 사람이 아니야 지금 21세기 최첨단 문명의 이기인 아이패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속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위안하기를 하루 종일 교인들을 위해 수고한 나 자신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거기에 집중함으로 아무리 우리교회가 좋고 제 목회가 다른 고생하는 목사님의 목회에 비하면 행복하다고 해도 여전히 인내하며 누르고 이룬 목회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끝까지 보거나 듣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곧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잠이 들었다고 그것을 끄면 곧 깨어났습니다. 자면서도 뭔가가 들려지지 않으면 깊은 잠을 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영혼의 허기인데도 육신의 식탐으로 채우고, 영혼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도 못 들으니 세상의 음악이나 예능의 소리로라도 채워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면서도 아이들에게는 그들이 잘못을 지적하며 큰 소리 치는 아빠로, 독재자로 군림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힘든 상황에서도 주위 친구들의 권면(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 중 가장 자주 쓰는 방법이라고 믿음)으로 참여한 세미나에서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제 자신의 문제와 직면했습니다. 사실은 여전히 교회를 바꾸기 위해서 배워서 써 먹으러 간 세미나였는데 오히려 제 자신의 연약함을 보았습니다. 합리화하고 싶었고 감추고 싶었던 제 자신의 연약함과 죄와 모순과 직면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바꾸기 전에 가장 먼저 제 자신의 내면을 바꾸는 것이 먼저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을 바꾸는데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말씀 앞에서 저의 죄와 연약함을 날마다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루에 3시간 이상씩을 제 자신을 먼저 말씀 앞에 드러내고 그것을 가지고 새벽에 여러분들을 만납니다. 이것이 최근 제가 최근 새벽 강단 말씀을 붙잡게 된 이유입니다.

 

혹 제 설교가 어느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설교한다든지, 교회의 방향이나 시스템에 큰 변화를 일으키기 위함이라든지 하는 잘못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굳이 특정인이 있다면 제 자신이며, 굳이 변화가 있다면 시스템이나 방향이 아니라 저와 우리 모두의 내면의 변화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변화 이전에 말씀 앞에서 우리 각자가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보길 바랄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와 연약함을 보지 마시고 나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보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정직에 도전하는 공동체라고 했을 때 그것이 사회적이고 윤리적은 차원을 뛰어넘어 죄와 연약함, 공동체와 말씀 앞에서의 정직함까지를 의미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렇게 될 때만이 우리 공동체는 진짜 말씀이 살아있고, 말씀으로 인해 가정과 자녀들의 회복과 치유, 그리고 삶의 변화가 따라오는 진정한 주님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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