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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크리스천인 것이 부끄럽습니까? (명성훈 목사, 성시교회)

 

이번 주 칼럼은 과거 순복음 교회 부목사 및 교회성장연구소장으로서 교회성장이라는 잡지 및 세미나를 통해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명성훈 목사의 글을 나눕니다. 많은 성장을 이야기 했지만 결국 본인이 목회를 하면서 가정교회를 만난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우리 다운 가족들이 더욱더 성경적인 교회, 가정교회에 대한 중요성을을 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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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기독교가 미디어에서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교회를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매도하고 있고, 안티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기독교인을 개독교인이라고 부릅니다. 교회당에 한 번도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기독교는 나쁜 종교, 기독교인들은 나쁜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천 가운데에서도 기독교인인 것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려는 사람들까지 생깁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가 민주국가가 되고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된 것은 기독교 때문입니다.

 

사실 현대 민주주의 자체가 기독교로 인하여 시작되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근거는 만민평등 사상입니다. 그러나 만민평등은 세계사적으로 볼 때 낯선 개념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다르다는 것이 고대 사회의 통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양반과 상놈의 신분 차이가 있었습니다. 힌두교도들은 인간을 4 계급으로 분류하여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는지에 의하여 신분이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라고 하는 희랍의 민주주의도, 귀족에게나 해당되었지, 노예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어떤 종교에서도, 어떤 철학에서도, 만민평등의 사상을 볼 수 없습니다.

 

만민평등 사상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에게 귀한 존재라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에서는 신분 차별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 신분과 계급이 없는 교회 공동체는 주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꽃 향기에 벌이 끌리는 것처럼 이방인들이 몰려들어 교회는 급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만민평등과 인간존중 사상은 크리스천들에 의하여 세계사 속에서 면면이 이어져왔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모습을 야외 극장에서 관람하며 즐기던 검투 경기를 로마 제국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를 중심으로 기독교인들이 노예 폐지 법안을 의회에 통과 시켜, 영국 뿐만이 아니라 모든 주변 국가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수잔 안토니(Susan Anthony)와 크리스천 여성 단체들이 투쟁을 벌여서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시작한 여권운동이 하나님을 저버리면서 오늘날과 같이, 남녀간의 신체적인 차이까지 부인하는 극단적인 여성운동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또한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무저항 운동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인종 차별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대받던 여성들을 위한 교육 기관과, 고아원, 양로원 등의 복지 시설들이 기독교의 도입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30~40년 전만 해도 아침 일찍 택시 타고 가다가 시각 장애자를 보면 재수가 없는 날이라고 하며 침을 뱉었지만, 기독교의 영향으로 신체장애자를 위한 시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외국인 근로자나 탈북자의 권익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기독교인입니다. 고아, 과부, 신체장애자, 외국인 근로자 등 힘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관심의 표적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기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가 매도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물론에 물든 사람들은 종교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싫어합니다. 타 종교인들은 예수님만이 구세주라는 메시지가 독선적이라고 기독교를 싫어합니다. 한반도 분단이나 6.25 전쟁의 책임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미국인의 종교라고 생각해서 싫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오에 가까운 거부감 뒤에는 한국 교회를 말살시키려는, 사단을 정점으로 하는 거대한 악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교회가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는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교회가 성공주의, 물질주의 권위주의에 물들어 비난의 여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교회를 보호한다고 성명서를 내고 데모를 해 보았자 소용이 없습니다. 기독교 미디어가 격렬하게 교회의 비리를 파헤치고 비판하지만, 교회는 정화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비난에 답하는 길은 주님이 꿈꾸셨던 교회를 회복하여, 교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향한 대응책은 가정교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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